Search

동맹이야기 이모저모 #17 삶을 밀어내는 성장 앞에서, 우리는 어떤 산업을 유지하고 확장할 것인가

동맹이야기 이모저모 #17

삶을 밀어내는 성장 앞에서, 우리는 어떤 산업을 유지하고 확장할 것인가

용인 반도체 국가산단과 초고압 송전탑 문제를 함께 바라보며
해미 기후정의동맹 집행위원
최근 기후정의동맹은 <지역의 식민지화에 맞선, 초고압 송전탑 반대 투쟁은 정당하다. 모두의 삶을 위협하는 반도체 국가산단계획을 전면 재검토하라(2026.1.5.)>라는 제목으로 초고압 송전탑 건설과 용인 반도체 국가산단 계획에 반대하는 공동성명을 띄웠습니다. 공동성명은 “지역의 식민지화에 맞선 투쟁은 정당하다”는 문장으로 시작합니다. 다소 강한 표현으로도 들릴 수도 있는 이 표현에는, 지금 송전탑을 두고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 단순한 개발 갈등이 아니라는 문제의식을 담았습니다. 이 글에서는 왜 이런 공동성명이 나오게 되었는지, 그리고 기후정의동맹이 이 문제를 기후정의의 관점에서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풀어 전해보려 합니다.
이 성명은 어느 날 갑자기 나온 입장문이 아니라, 용인 반도체 국가산단과 이를 떠받치기 위해 추진되고 있는 초고압 송전선로 건설 계획을 지켜보며 기후정의동맹이 쌓아온 문제의식 위에 있습니다. 지난 윤석열 정부에서 졸속으로 추진된 용인 반도체 국가산단 계획은 처음부터 여러 질문을 안고 있었습니다. 기후생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노동자의 안전은 어떻게 보장되는지, 환경오염과 생태파괴의 위험은 누가 감당하게 되는지, 그리고 왜 이 과정에서 공적 자금이 대기업 재벌에게 각종 특혜가 주어지는지에 대한 질문들이 충분히 답해지지 않은 채 계획은 속도를 냈습니다. 여기에 국가산단에 전력을 공급하기 위한 장거리 초고압 송전선로와 변전소 건설 계획이 더해지면서 문제의 지형은 지역으로도 확산됐습니다.
아마 많은 분들께서 지역주민들의 삶에 대한 고려 없이 들이닥친 송전탑을 비판하고 함께 맞섰던 경험이 있으시리라 생각합니다. 반도체클러스터에 전기를 끌어다주기 위한 송전선로가 지나갈 예정인 지역의 주민들과 농민들은 삶의 터전 한가운데에 송전탑이 세워지는 상황을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농지와 산, 마을과 공동체가 직접적인 영향을 받게 되자 당연하게도 반대와 저항이 이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싸움들은 어느 한 지역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인식 속에서 서로 연결되었고, 그 위에서 지난해 12월 ‘용인 반도체 국가산단 재검토와 초고압 송전탑 건설 반대 전국행동’이 출범하게 되었습니다.
기후정의동맹이 이 사태의 근본 원인인 용인 반도체 국가산단 사업의 전면 재검토를 촉구하는 목소리에 공감하며 함께 싸울 연대의 의지를 다진다고 한 이유는, 이 문제가 기후정의의 관점에서도 너무나 정당하고 중요한 싸움이라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이 사태는 한국 사회의 에너지 체계와 산업 구조가 오랫동안 어떤 방식으로 작동해왔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했습니다. 수도권과 전력 다소비 산업을 위해 필요한 에너지를 만들고 끌어다 보내는 과정에서, 그 부담은 반복해서 지역의 주민과 농민, 노동자, 그리고 자연에게 전가되어 온 문제인 것이지요. 이는 핵발전소와 석탄발전소 건설 과정에서도 그랬고, 재생에너지가 대안으로 등장한 이후에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전력은 소비지로 향하고, 위험과 훼손은 생산지에 남는 구조가 계속되어 왔습니다. 밀양과 청도에서 주민들이 “지역을 에너지 식민지로 만들지 말라”고 외쳤던 이유이기도 합니다. 이번 송전탑 반대 투쟁은, 이런 불평등한 구조가 여전히 현재진행형임을 다시 한 번 드러내는 투쟁일 텝니다.
이번 공동성명에서 저희가 특히 강조하고 싶었던 지점은, 문제의 핵심이 초고압 송전선로 자체에만 있지 않다는 점입니다. 송전선로가 우후죽순 들이닥치는 그 배경에는 노동자·농민·자연의 희생을 전제로 한 ‘반도체 산업의 무조건적인 확장’이 놓여 있습니다. 반도체 국가산단이 들어서는 곳마다 막대한 전력과 물이 필요해지고, 그 요구를 충족하기 위해 또 다른 지역의 자원과 공간이 동원됩니다. 그 과정에서 많은 지역이 전력과 용수를 생산·공급하는 공간으로 전락하고, 주민들의 삶은 뒤로 밀려나는 겁니다.
이 때문에 공동성명에서는 반도체 국가산단의 ‘지방 이전’을 해법으로 제시하는 주장에도 동의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자 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수도권 집중을 완화하는 대안처럼 보일 수 있지만, 산업의 규모와 구조를 그대로 둔 채 부담만 다른 지역으로 옮기는 방식이라 생각합니다. 재생에너지가 아무리 풍부하다고 알려진 지역이라 하더라도, 그에 비해서도 반도체 생산에 필요한 막대한 용수와 에너지를 감당할 수 있는 곳은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기후위기 속에서 물 부족이 심화되는 현실, 여기저기서 반도체와 AI는 더 이상 기술 전쟁이 아니라 물과 에너지 전쟁이라는 말이 떠도는 현실을 고려하면 산업을 위해 주민과 농업의 몫을 줄이는 선택이 반복될 가능성도 충분히 큽니다. 이미 다른 국가에서는 이러한 위험이 현실로 드러난 바 있습니다. 가뭄 속에서 반도체 공장에 물을 우선 공급하기 위해 주민들의 생활용수가 제한되고 농사가 중단된 대만의 사례는, 산업이 우선될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분명히 보여줍니다. 여기에 더해 송전탑과 산업단지 건설로 사라지는 농지와 산은 결국 또 다른 개발을 위해 내놓아야 할 땅이 되곤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말해지는 ‘균형발전’이나 ‘지역 발전’이 대체 누구를 위한 것인지 묻게 됩니다.
반도체 산업이 지역에 가져다줄 것이라 기대되는 일자리 역시 냉정하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봤습니다. 고도로 자동화된 산업 구조 속에서 고용 효과는 제한적입니다. 반도체 공장 안에서는 오랫동안 유해 화학물질 노출과 장시간 노동, 위험의 외주화 문제가 반복되어온 바가 있습니다. ‘국가전략산업’이라는 이름 아래 노동자 안전과 관련된 정보는 충분히 공개되지 않았고, 그 결과 노동자의 생명과 건강은 지속적으로 위협받아 왔습니다. 이 위험은 이제 지역의 환경과 주민들에게까지 확장될 위험이 큽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반도체특별법을 조만간 제정하여 반도체기업에 대한 세금 감면과 규제 완화 같은 혜택에 박차를 가할 가능성이 큽니다. 이는 산업단지의 위치와 상관없이, 공공의 자원이 대기업의 사적 이윤으로 이전되는 구조를 고착화할 위험과도 이어집니다. 노동과 생태를 위험으로 내모는 선택에 대해 기업이 책임지지 않아도 되는 구조도 강화될 텝니다.
그래서 기후정의동맹은 이번 성명을 통해, 지금 제시되고 있는 선택지가 정말 기후정의운동을 하는 우리의 답이 될 수 있는지 함께 묻고 싶었습니다. 반도체 클러스터를 어디에 설치하냐-수도권이냐 지역이냐-는 질문은 모두 반도체 산업의 확장을 전제합니다. 그러나 기후생태위기에 직면한 지금 정말 필요한 질문은 다른 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해 어떤 산업을 얼마나 유지하고 확장할 것인지, 한정된 자원과 에너지를 어디에 우선적으로 써야 하는지부터 다시 물어야 할 때입니다. 그리고 이 질문은 반도체 산업도 예외일 수 없습니다. 무엇을, 얼마나, 어떤 방식으로 생산할 것인지를 자본과 권력이 일방적으로 결정하는 구조가 아니라, 지역 주민과 농민, 노동자가 실질적인 결정과 통제 권한을 갖는 구조로 바꾸지 않는다면, 비슷한 갈등은 형태만 바꾼 채 계속 반복될 것입니다.
기후정의동맹은 이번 공동성명으로 완성된 답을 제시하기보다는, 이 문제를 바라보는 관점을 분명히 하고자 했습니다. 이 성명은 반도체 국가산단을 어디로 옮길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라, 이 계획 자체를 다시 들여다보고 질문하자는 제안입니다. 단비님들도 이 지점에서 함께 생각해 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반도체 국가산단과 초고압 송전탑 문제는 특정 지역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어떤 사회를 선택할 것인지와 맞닿아 있기 때문입니다.
기후정의동맹은 앞으로도 이런 질문을 지역의 싸움과 연결하며, 함께 고민하고 연대해 나가려 합니다. 이번 성명이 그 출발점 중 하나가 되기를 바라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