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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WCA 유에스더

YWCA 유에스더

지난 14일 국회 앞에서 탄핵 소추안이 가결되고 환호하는 사람들, 눈물짓는 얼굴들 위로 소녀시대의 노래, 다시 만난 세계가 흘렀습니다. 오랜만에 마주한 이 풍경은 제가 대학생이던 2016년 총장본관 바닥에 앉아 시험 공부하던 순간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기숙사에 살던 저는 통학하는 친구들 대신 주로 밤에 본관을 지켜야겠다고 생각했고, 날이 밝아서야 밥을 먹으러 정문으로 나가려다 학교 안과 밖에 차있는 수십대의 전경버스와 열을 맞춰 들어오는 푸른색 행렬을 보곤 황급히 다시 본관으로 돌아갔던 기억이 있습니다. 오전이라 인원이 많지 않았던 본관에 남은 학생들이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는 경찰 1600명을 밖에 두곤 이 자리를 지켜내야 한다는 마음과 두려움, 불안, 피곤이 범벅된 긴장감 속에 누군가 다시 만난 세계를 나지막이 부르자 모두 같이 따라 불렀습니다.
2016년도 그렇고, 2024년도 응원봉과 K팝 문화로 대두되는 여성들의 정치참여는 많은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언제나 여성은 광장에서 현장에서 자리를 지키며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참 이제와 새삼스러운 일이지만, 윤석열이 갈라치기도 전략이라고 여성을 없는 존재로 취급했다는 점을 생각하면 더 많은 여성들이 주목받아야 할 필요를 생각해보기도 합니다.
대학생의 시절을 지나 활동가로 일하면서, 제가 다닌 현장에도 항상 여성들이 있었습니다. 초고압 송전탑으로 마을 공동체가 산산조각 났지만 여전히 그 자리에서 윤석열의 폭주하는 핵발전 정책을 멈추고 송전탑을 뽑아내야 한다고 외치는 밀양의 할매들, 핵발전소가 코앞에 보이는 동네에서 갑상선암과 싸우며 10년 동안 천막에서 이주를 요구한 월성의 주민들, 핵지역에도 사람 산다며 아이들과 안전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 달라고 고리 1호기 핵발전소 폐쇄를 위한 10만 명 서명의 촉발지가 된 부산 YWCA, 후쿠시마에서 방류되는 방사성 오염수에 대해 문제제기한 제주의 해녀들, 새로운 핵발전소와 낡은 핵발전소의 위험한 수명연장은 안된다고 몸으로 공청회장을 막아낸 활동가들.. 그 밖에 이곳에 함께 계신 분들이 항상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야 할 에너지문제를 정쟁의 불씨로, 핵산업계의 먹잇감으로, 주민들을 침묵시키며 비민주적으로 만든 윤석열의 핵진흥 정책은 양복 입은 전문가의 무늬를 했을 뿐 그 본질은 군홧발로 나라를 잠잠히 하려던 바와 다르지 않습니다. 이곳 서울에서는 보이지 않지만, 영광, 부산, 울산, 경주에는 무려 30 여기의 핵발전소가 가동되고 있고, 주민들은 상시적인 피폭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모두가 잊은 것만 같은 핵 지역, 윤석열이 탈-탈원전 정책을 외치며 또 한 번 갈라치고, 없는 존재로 치부한 핵발전소 지역에도, 그 자리를 지켜내야 한다는 마음과 두려움, 불안, 피곤이 범벅된 긴장감 속에 수십 년씩 살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가 꿈꾸는 다시 만날 세계는 무엇입니까. 단순히 윤석열이 물러나는 세상은 아닐 것입니다. 윤석열이 3년 동안 악화시킨 세상, 더 나아가 윤석열을 만들어낸 세상을 바꾸어 내는 것. 어느 지역에 사는 누구의 목소리도 국가적인 폭력 속에 묻히지 않는 정의로운 세계일 것입니다. 다만세 노래에 나오는 것처럼, “이 세상 속에서 반복되는 슬픔 이제 안녕” 윤석열 탄핵하고 어떤 슬픔도 반복되지 않는 세상으로 나갑시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