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당 레마
12월 7일과 14일, 탄핵소추안이 상정되고 가결되는 모습을 광장에서 지켜봤습니다.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노래는 온 광장에 울려퍼졌는데, 비인간 비시민 비국민은 커녕, 국민에 포함된 이들조차 멍하니 국회의 모습을 화면으로 바라만 보고 있었습니다. 따뜻한 국회 속에서, 양복을 입은 의원들의 손끝에, 국가권력의 향방이 결정되었습니다. 국회는 민주주의의 승리를 외쳤지만, 저는 이것이 민주주의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권력이 누구에게 있어야 민주주의겠습니까?
사실 우리에게 낯설지는 않은 광경이었습니다. 기후위기의 당사자들을 들러리로 만드는 COP가 그랬고, 동수일 수 없는 사용자와 노동자가 동수로 배치되는 최저임금위원회가 그랬고, 빈민 당사자가 철저히 배제된 중앙생활보장위원회가 그랬습니다. 우리는 이 체제에서 한 번도 주체인 적 없었고, 그저 무능력하고 게을러서 가난해진 존재가 되어, 정치에서 주가 아닌 객으로 취급받으며, 장외에서 뉴스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이 모순적인 체제의 위기가 윤석열의 쿠데타보다 먼저 폭로된 것은, 바로 기후위기였습니다. 우리가 발딛고 서 있는 이 땅이 소수의 자본가들에 의해 죽음으로 물들어가는데, 체제는 우리에게 그 어떤 결정권도 보장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전세계의 민중들이 기후정의를 실현하자고 거리로 나온 것 아닙니까. 우리가 온전한 주체인 광장에서, 우리가 우리로서, 우리의 권리를 되찾고자 나오지 않았습니까. 지금의 광장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번 쿠데타 사태의 제1과제는 권력을 통제할 방안을 찾는 것일진데, 민주당은 대통령을 견제한답시고 국회의 권력만을 키우려 합니다. 그리고 백만 이백만 광장의 목소리를, 그저 윤석열만 탄핵하면 되는 것인 양 멋대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이는 광장에 대한 모욕입니다.
우리 기후위기를 해결하라고 외치는 사람들이 요구하는 것이, 탄소만 덜 배출해서, 기후위기만 해결한 다음, 다시 불평등한 지구를 지속가능하게 만들어달라는 것이었습니까? 아닙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더 넓고 더 빛나는 것입니다. 윤석열 탄핵을 외치는 광장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정말 광장에 모인 백만 이백만의 목소리가, 오직 윤석열만을 탄핵하고, 다시 낡은 쪽방으로 비좁은 고시원으로 무사히 돌아가자고, 죽음의 노동현장으로 죽음의 길거리로 다시 돌아가자고 말하는, 그런 초라한 것입니까? 지금의 광장이, 정말로 계엄령의 위협만을 없애고, 다시 차별받고 가난한 일상으로 돌아가, 전쟁과 학살의 세계를 회복하고자 하는, 그런 광장입니까? 아닙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평등이고 권리이고 존엄입니다.
지금의 광장이, 그저 권력을 윤석열에게서 이재명에게로 양도하려는 곳이라면, 저는 그 광장 안갈랍니다. 우리의 투쟁이 대통령이 다시는 쿠데타를 못 일으키게 해야한답시고, 국회의 권력만 불리기 위한 것이라면, 저는 그 투쟁 안할랍니다. 하지만 광장에 나부끼던 무지개 깃발이 있었고, 팔레스타인 깃발이 있었고, 여성해방 노동해방 동물해방의 깃발이 있었기에, 광장의 요구를 곡해하던 세력이 틀렸고, 우리가 옳다는 것이 증명되지 않았습니까. 바로 여기 모인 기후정의의 깃발이 왜 광장으로 갔는지, 우리 진보정당들이 왜 광장으로 나아갔는지가 그 증거이지 않갰습니까.
청소년 운동이 말했습니다. ‘좋은 어른이 많은 세상이 아니라 나쁜 어른을 만나더라도 두렵지 않은 세상을 만들어 가자’고 말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힌트를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 좋은 정치인이 많은 세상이 아니라, 나쁜 정치인이 당선되어도 두렵지 않은 세상을 만듭시다. 윤석열에게서 권력을 빼앗아 이재명에게 줄 것이 아니라, 대통령이 이재명이든 윤석열이든, 민중이 권력을 되찾은 세상을 만듭시다. 탄핵은 경유지일 뿐입니다. 국민의힘이 발전노동자들의 정의로운 전환을 지지할 수 밖에 없는 세상, 민주당이 팔레스타인의 해방을 말할 수 밖에 없는 세상을 만듭시다. 그리고 그 세계에서, 아마 우리 진보정당들은 가장 유능한 정당이지 않겠습니까.
이번 주 토요일에도 광장이 열립니다. 헌법재판소만 바라보고 있는데에 그치지 맙시다. 우리, 그 무엇을 하더라도, 헌재의 힘도 아니고, 국회의 힘도 아니고, 민주당의 힘도 아닌, 민중의 힘으로 이뤄냅시다. 더 시끄럽고 무질서하고 더 다양한 광장에서, 민중의 권력과 권리를 되찾기 위해 다시 만납시다. 투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