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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집] 240323체제전환운동의 정치를 시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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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탁토론 발제문 : 체제전환운동의 정치를 시작하자

체제전환운동은 자본주의 체제와 단절을 통해 새로운 세계를 열어내는 운동이다

오늘날의 위기를 초래한 자본주의 비판과 분석을 확장하자. 마치 종말이라도 온듯이 모두가 '위기'를 말하지만 정작 어디에서 비롯된 위기인지, 위기가 실제로 누구에게 전가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다. 우리는 오늘날 위기를 '자본주의 체제가 초래한 위기'로 규정한다. 자본주의는 그 무엇이든 가장 값싸게 조달하기 위해 착취와 수탈을 서슴지 않고, 그 무엇이든 돈벌이 수단으로 만들어 이윤을 추구하고 무한 성장하는 것이 유일한 목적인 체제이다. 이 압도적인 힘은 다양한 사회적 영역과 질서들을, 자연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조직하고 배치해 착취 수탈한다는 점에서 '경제 시스템'을 넘어 지금 이 세계의 다른 이름이다. 이는 생산/재생산, 인간/비인간 자연, 북반구/남반구라는 위계와 분할을 통해 이 세계를 착취하고 수탈해온 자본 폭력의 파노라마로 펼쳐진다. 그 결과가 기후생태위기, 돌봄 재생산위기, 노동위기이다. 자본 축적과 무한 성장을 철칙으로 하는 자본주의 체제의 작동 자체가 오늘날의 전면적인 위기를 초래한 것이다.
체제의 위기 전가에 맞서자. 오늘날의 위기가 자본주의 체제의 붕괴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지배세력은 체제가 초래한 위기를 노동자 민중에게, 여성과 사회적 소수자에게, 남반구에, 자연에 떠넘기며 위기를 지연시키고 자본주의 체제를 지속하려 한다. 기후위기에 대응하겠다는 '녹색 자본주의'가 대표적이다. 탄소에 가격을 매기고 이를 거래가능하도록 만든 ‘배출권 거래제'는 자연에 대한 광범위한 금융화/자산화 흐름을 촉진했고 이는 비인간 동물을 포함한 자연 수탈을 가속화 하면서 자본축적의 새로운 원천이 되고 있다. 여성과 가족에게 일방적으로 전가되었던 돌봄이 지속 불가능해지자, 이주노동자에게 이를 떠넘기며 인종적 착취와 수탈을 강화한다. 고용과 실업을 오가며 부채를 통해 생계를 이어가는 대다수 노동자, 자영업자들에겐 더 많은 대출을 알선해 미래를 저당잡고, 조직된 노동자들의 투쟁은 가차없이 탄압하면서 모든 위험을 개인화하는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대안체제로의 전환, 자본주의 체제와 단절에서 시작하자. 체제가 전가한 위기 속에 각자도생의 삶이 아닌, 위기를 함께 겪으며 다른 세계를 열어낼 힘을 조직해야 한다. 이윤에 모든 것을 종속시키는 자본주의 사회를 변혁하여, 사회생태적 재생산을 중심에 두며 사회적, 물질적 필요를 생산할 대안체제를 구축해야 한다. 이는 자본주의 체제의 실패를 수습하는 '정책대안'이 아닌 자본주의 체제와의 단절로부터 가능하다. 자본주의 체제와의 단절은 '자본주의 문명 비판'이나 '대안적 가치에 대한 호소'가 아닌 체제가 작동하며 만들어내는 구체적인 힘과 현실에 맞선 투쟁으로부터 시작된다. 빈곤의 현장에서, 일터에서, 학교에서, 자연 수탈의 현장에서 존엄과 평등을 향한 싸움들을 조직해야 한다. 관건은 어떻게 이러한 투쟁들을 조직하고, 이를 자본주의 체제와 단절할 힘으로 모아낼 것인가이다.

체제전환운동, ‘민중의 세력화'를 위한 거점이자 조직가가 되자

체제전환을 위한 '민중의 세력화'에 나서자. 흔히 사회운동은 문제를 발견하고 정책대안을 제안하며 이를 홍보하고 지지를 구하는 활동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하지만 민중의 세력화는 특정 문제에 대한 해결방안을 마련하고, 당사자가 정책의 수혜자나 지지자가 되는 것 그 이상이다. 또한 체제가 제시한 정치의 경계인 '선거투표와 여론조사'의 대상이 되는 것과도 근본적으로 다르다. 민중의 세력화는 바로 민중이 대안체제를 열어가는 '정치적 주체'로 등장하는 것이다. 이렇게 결집된 민중의 힘을 통해 제도적 대안은 관성적인 '정책'이 아닌 구조적 변화를 이끌 수 있는 체제전환의 교두보가 될 수 있다. 체제전환운동은 억압당하는 모든 이들이 삶의 현장에서 저항하며 만들어가는 수많은 싸움들을 체제의 모순과 부조리에 맞선 투쟁으로 조직해야 한다. 체제전환운동은 다른 무엇보다도 민중의 세력화를 위한 거점이자 '조직가'가 되어야 한다.
서로를 가로지르며 '민중의 세력화'를 시작하자. 자본주의 착취 수탈체계의 확장과 변동 속에서 '민중'의 모습이 달라지고 있다. 노동자의 얼굴로 여성을, 농민의 얼굴로 이주노동자를, 빈민의 얼굴로 청년을 떠올릴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어느 누구도 생계로부터, 성별체계로부터, 돌봄으로부터, 자연으로부터, 국가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삶의 모든 영역과 장소들로 착취와 수탈의 힘이 뻗어나가는만큼 정체성은 분할되고 이해관계는 더욱 복잡해진다. 현실의 억압과 부조리에 맞선 크고 작은 싸움들은 끊임없이 이해당사자의 특수한 문제로 규정되며 각기 다른 처지와 정체성의 문제로 협소화되어 조각난다. 하지만 자본주의 착취 수탈 체계의 확장은 다양한 영역과 현장의 투쟁들을 엮어내는 중요한 토대가 된다. 각자의 자리에서 분투해오던 다양한 사회운동들은 체제에 맞선 전망 속에서 더 잘 싸울 수 있는 계기를 발견한다. 분할된 이해관계와 조각난 정체성은 여러 운동들이 서로를 가로지르는 다양한 실천을 요청한다. 새로운 권리 목록을 발명하고 새로운 주체를 할당하는 게 아니라, 서로를 가로지르며 자본에 맞선 집합적 주체로서 '민중의 세력화'를 시작하자.
'보편적 권리와 정의를 위한 투쟁'으로 민중의 세력화를 이뤄내자. 채용성차별, 성별임금격차의 문제 이면에는 돌봄재생산 노동을 여성과 가족에게 전가해 빈곤의 여성화를 고착시킨 자본의 돌봄 부정의가 있다. 비정규직 차별 역시 개별 사업장 차원을 넘어, 외주화를 통해 노동의 위계와 격차를 생산해온 신자유주의 노동 체제의 문제가 자리하고 있다. 기초생활수급자, 장애인, 홈리스들은 안타까운 빈곤/취약계층으로 규정되지만, 이들은 한국 사회의 가혹한 불평등을 먼저 겪고 있을 따름이다. 이 싸움들이 여성, 비정규직, 빈곤/취약계층의 특수한 문제가 아닌, 돌봄과 재생산정의, 노동권과 생존권을 쟁취하기 위한 '보편적 권리와 정의를 위한 투쟁'들로 새롭게 조직되어야 한다. 이는 분할된 이해관계를 넘어 체제에 맞서는 싸움을 조직해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억압에 맞선 수많은 싸움들은 함께 세력화하는 전망 속에서만 체제에 맞선 힘이 될 수 있다. '보편적 권리와 정의를 위한 투쟁' 속에서 '우리의 구호'를 함께 외칠 수 있을 때, 민중의 세력화는 이루어진다.

체제전환운동의 주체가 되어 서로를 조직하자

체제전환운동으로 공동의 역사를 만들어가자. 22대 총선을 앞두고 여러 정치세력들이 이합집산하는 지금, 우리는 '체제전환운동 정치대회'에 모였다. 우리가 이렇게 모일 수 있었던 건, 다양한 영역과 현장에서 해방의 꿈을 잃지 않고 운동을 일궈온 사회운동의 역사가 있었기 때문이다. 각각의 의제와 부문으로 나뉘어 있지만, 서로의 투쟁을 지지하며 연대의 흐름을 꾸준히 이어왔다. 이러한 공동경험 속에서 각각의 문제들이 특수한 개별 사안이 아닌 서로 복잡하게 얽혀 있는, 지금 여기 체제의 문제라는 것을 활동 속에서 함께 경험해왔다. 하지만 이러한 '공통감각'은 이대로는 안된다는 절박함이기도 하다. 체제전환운동으로 우리를 재조직하지 않고서는 현실을 바꾸는 운동은 불가능하다는 통찰은 ‘체제전환'이라는 구호를 넘어 '체제전환운동' 조직화로 우리를 인도한다.
공동의 전망으로 우리 스스로를 새롭게 조직하자. 자본주의 체제를 넘어서기 위한 정치적 전망과 실천으로 우리 스스로를 새롭게 조직하자. 서로를 체제전환운동으로 짚어주고 밝혀주기 위해 다음을 함께 도모해보자. 1) 체제전환의 관점에서 정세를 분석하고, 구체적 개입을 위한 '실천적 운동과제'를 함께 도출하는 작업, 2) 민중의 세력화를 위한 거점이자, 조직가로 역할할 수 있는 상호지원과 전략 수립을 위한 관계의 형성이 그것이다. 각 운동의 현안과 정책 대응을 위한 토론회는 많지만, 체제의 변화를 살피며 우리의 힘을 모을 정세적 계기를 발견하는 노력은 부족하다. 체제에 대한 앙상한 구조적 분석과 관성적인 제도적 대안 사이를 오가는 게 아닌, 현실에 개입하고 구체적인 변화를 조직하기 위한 실천적 운동과제를 함께 찾아가야 한다. 또한 체제전환의 관점에서 제기된 실천적 운동과제를 펼치기 위한, 즉 이를 구체적인 투쟁으로 조직하는 '민중의 세력화'를 위한 전략과 상호지원을 함께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
체제전환운동을 조직해가며 연합체 건설로 나아가자. 보편적 권리와 정의를 위한 투쟁, 서로를 가로지르는 실천 속에 이루어지는 '민중의 세력화'는 지금처럼 분절된 사회운동의 조건에서는 그 누구에게도 여의치 않다. 결코 홀로 할 수 없는 체제전환운동의 조건들을 함께 만들어가기 위한 실천들을 시작하자. 이는 앞서 확인한 체제전환운동이 가져야 할 시야와 전망을 벼리는 동시에, 이를 가능하게 할 운동의 역량과 조건들을 함께 만드는 노력이다. 어느 한 순간의 결의나 실천이 아닌, 지치지 않고 체제전환운동의 주체가 될 수 있도록 서로를 짚어주며 기댈 수 있는 관계를 만드는 노력이다. 저마다 다른 운동의 도전이 체제전환의 힘으로 모일 수 있도록, 운동 간 상호의존의 관계가 이어질 결속의 형태와 작동원리를 함께 궁리하고 시도하자. 체제전환운동으로 스스로를 조직하고자 하는 더 많은 이들이 함께 할 수 있는 구체적인 실천과 관계를 제안하고 만들어가자. 체제전환운동 정치대회 조직위원회는 '체제전환운동 조직위원회'로 전환하여 체제전환운동의 연합체로 나아가기 위한 노력과 실천들을 펼쳐나갈 것이다.